프로야구 ‘여성 캐스터’ 0명, 진정 ‘禁女의 벽’인가 [김대호의 야구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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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관련 여성 종사자 크게 늘어나
방송사마다 여자 아나운서 많지만 캐스터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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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미 전 SBS 아나운서는 지상파 첫 프로야구 여성 캐스터로 꼽힌다. /윤영미 인스타그램 캡쳐 |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2025년 5월 말 현재 프로야구 관중의 51.5%가 여성인 것으로 집계됐다. 48.5%가 남성이다.(티켓링크 조사) 여초 현상에 발맞춰 야구장 모든 편의 시설이 여성 관중을 위해 리모델링 돼 있다. 여성들은 식음료와 굿즈 등 구매력에서도 남성들을 압도하는 것으로 조사돼 그야말로 야구단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프로야구 관련 종사자도 여성들의 진입이 크게 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없던 프로야구 전담 여기자가 지금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효진 KBSN PD는 2022년 여성 최초로 프로야구 중계방송 메인 디렉터가 됐으며, 남정연 한국야구위원회(KBO) 현 경영본부장보는 2018년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여성 홍보팀장에 임명됐다. 여성 단장, 사장도 머지않아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 프로야구 각 구단의 다양한 캐릭터 상품. 주 고객층인 여성들의 관심을 끄는 상품들이 대부분이다. |
2000년대 들어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이 늘어나고, 프로야구 전 경기를 생중계하면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각 방송사가 여성 아나운서를 프로야구 현장에 투입한 것이다. 방송사마다 3~5명의 여성 아나운서를 신규 채용해 이들에게 경기 전후 선수 인터뷰와 현장 스케치 그리고 하이라이트 방송 진행을 맡겼다. 이 같은 방식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숱한 여성 아나운서 가운데 프로야구 경기를 진행하는 캐스터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캐스터는 주어진 원고를 읽는 아나운서와 다르다.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다. 미국에선 이를 ‘Play by Play Caster’라고 부른다. 경기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고, 이를 빠르게 전달해야 한다. 또한 매끄러운 진행으로 해설가의 도움을 이끌어 내야 한다. 야구 전반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정보, 깊은 이해가 없으면 해낼 수 없다.
우리나라엔 3명의 여성 프로야구 캐스터가 있었다. 1976년 한영호(TBC), 1994년 윤영미(SBS), 1998년 이명희(CBS) 씨로 모두 라디오에서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맡았다. TV 캐스터는 아직 없다. 미국에선 NBC-TV 게일 가드너(1950~)가 1993년 8월3일 콜로라도-신시내티 경기를 생중계한 것이 여성 캐스터 최초다. 2018년엔 제니 케이브너가 가드너 이후 25년 만에 AT&T 스포츠넷 여성 캐스터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메이저리그엔 지금도 여성 캐스터 몇몇이 활동하고 있다.
| 관중들로 가득 찬 잠실 야구장.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 팬들이다. 하지만 여성 캐스터는 아직 없다. /뉴시스 |
KBO리그에 여성 캐스터가 없는 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기회의 불균형’이다. 남성은 입사 1~2년만 지나도 메인 종목 캐스터를 맡지만 여성은 6~7년이 지나도 기회 자체가 없다. 대부분 케이블 채널이 여성 아나운서를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문제다. 신분 상 전문성을 키울 교육을 받지 못한다. 구조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벽을 세워 놓고 있는 것이다. 남성 아나운서는 모두 정규직이다.
여성 아나운서의 강력한 의지가 부족한 이유도 있다. 야구 축구 등 구기 종목은 남성이 진행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영미 전 SBS 아나운서는 프로야구 캐스터를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야구 리포터를 자원해 1년 동안 야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적확한 용어 구사와 말투를 배우기 위해 선배들의 중계 내용을 달달 외웠다고 한다. 그리고 난 뒤 프로야구 시범 경기와 고교야구 중계를 통해 엄격한 오디션을 통과했다. 한 스포츠 채널 관계자에 따르면 여성 아나운서 가운데 프로야구 캐스터에 도전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은 험난하다. 그러나 부담감이 큰 만큼 성취감은 크고 직업적 자부심도 생긴다. 그 전에 아직도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 여성들 눈에 비치는 야구를 여성들 시각으로 전달할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