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 토미 플리트우드, '불운의 끝'은 어디인가 [박호윤의 IN&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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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주드챔피언십 3홀 남기고 또 다시 분루
162경기째 우승 없지만 상금 452억원 '무관의 최강자'
긍정적 사고에 찬사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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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플리트우드가 페덱스 세인트주드챔피언십 3라운드 18번홀 티샷 후 아쉬운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AP.뉴시스 |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그는 또 한 번 PGA투어 첫 승을 거둘 기회를 잡았다. 최종 라운드 16번홀 티에 섰을 때 그는 2타 차 선두였고 가장 위협적인 추격자 스코티 셰플러는 직전 홀에서 보기로 타수를 잃어 사실상 경쟁에서 멀어진 듯했다. 그는 시즌 내내 보여 주었던 것처럼 티샷과 퍼트를 완벽에 가깝게 구사하며 경기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트로피 없이 경기장을 떠났다."
PGA투어 홈페이지의 디지털 콘텐츠를 총괄하고 있는 지미 레인맨은 공식 웹에 게재된 칼럼을 통해 자신의 162번째 PGA투어 대회에서 또 다시 정상 등극에 실패한 토미 플리트우드(34·잉글랜드)에 대해 이같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이제 플리트우드의 이야기는 현대 골프계에서 가장 안타까운 서사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나 맥베드와 달리 이 이야기에는 마지막 장이 없으며 그의 여정은 여전히 희망과 좌절을 오가며 계속되고 있다"고 적었다.
지난 11일 끝난 올시즌 PGA투어 플레이오프 1차전 페덱스 세인트주드챔피언십에서는 저스틴 로즈(잉글랜드)가 올해 US오픈 챔피언 J J 스폰(미국)을 연장 끝에 제치고 우승했다. 45세가 넘은 나이에 정상에 올라 플레이오프 역대 최고령 챔피언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우며 지난 마스터스 토너먼트 연장전에서 로리 맥길로이에 패한 것을 만회했다. 반면 스폰은 지난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연장전에서 역시 로리 맥길로이에 패한 데 이어 이번에 또 다시 분루를 삼켰다.
당대 최강 셰플러도 최종 라운드 중반 한 때 공동 선두까지 오르는 등 상위 4명의 엎치락뒤치락 명승부가 펼쳐진 가운데 우승과 관련해선 ‘불운의 아이콘’이랄 수밖에 없는 플리트우드는 정상까지 불과 3개 홀 만을 남긴 상황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지 못한 채 다시 고개를 떨궜다. 이번엔 자신의 라이더컵 동료인 로즈를 축하해 주는 들러리 역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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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우드가 세인트주드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 16번홀(파5)에서 파에 그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AP.뉴시스 |
1라운드 7언더파에 이어 2라운드에서도 6타를 줄이는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로 단독 선두에 나선 플리트우드는 무빙데이에 비록 1타를 줄이는데 그쳤지만 로즈에 1타 앞선 채 최종일을 맞이함으로써 ‘161전 162기’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첫 홀 보기로 불안하게 출발하기는 했으나 12번홀 10미터 버디 퍼트로 반전에 성공한 뒤 13번홀과 15번홀에서 또 다시 거푸 버디를 낚아 3홀을 남기고 2타 차로 다시 리더보드 맨 상단을 점령함으로써 대망의 우승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 중 두 번째로 쉬운 홀이었던 파5의 16번홀이 잔인한 서사의 전환점이었다. 로즈, 스폰, 셰플러가 모두 버디를 잡는 동안 두 번째 샷을 갤러리 석으로 날린 뒤 그린 근처에서의 세 번째 샷도 그린을 놓쳐 힘겹게 파에 그침으로써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7번홀이 결정타였다. 두 번째 샷이 왼쪽으로 크게 빗나갔고 어프로치에 이은 2m 파 퍼팅마저 홀을 외면, 선두를 로즈와 스폰에 내줬고 마지막 홀에서는 티샷이 오른쪽 벙커로 향함으로써 결국 연장 합류를 위한 버디 기회를 잡는데 실패하며 또 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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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우드(왼쪽)가 트래블러스챔피언십 마지막 18번홀에서 3퍼트로 보기를 한 뒤 고개를 숙인 채 아쉬워하고 있다. 결국 우승을 키건 브래들리에게 내줬다./AP.뉴시스 |
지난 6월의 트래블러스챔피언십에서는 이번보다 더 뼈아픈 기억이 있다. 71홀을 마칠 때 까지 선두였지만 마지막 한 홀을 못버텨 우승컵을 내줬다. 상금이 2000만 달러나 걸린 시그니처 이벤트인 그 대회에서 플리트우드는 당시 3타 차 선두로 최종일을 맞았고 18번 홀을 앞두고는 1타 앞선 단독 선두였으나 치명적인 3퍼트로 보기를 범해 극적인 버디를 낚은 키건 브래들리(미국)에 우승을 헌납하기도 했다. 2018년 라이더컵에서 4전 전승을 거두며 특히 강한 면모를 보였던 플리트우드가 공교롭게도(?) 2025라이더컵의 미국팀 캡틴인 브래들리에 덜미를 잡힌 셈이다.
플리트우드는 2018년에 PGA투어에 합류, 올해로 8년 차다. 그간 162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단 한 차례도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하지만 준우승과 3위를 각각 여섯 차례 기록하는 등 톱 5가 29회, 톱 10이 43회다. 누적 상금은 무려 3,252만달러(약 452억원). 우승이 없는 선수 중 가장 많은 상금과 가장 많은 톱10을 기록 중인 ‘무관의 최강자’다.
특히 2025년은 자신으로선 모든 지표상에서 나타나듯 최고의 시즌이다. 스트로크 게인드 4위에 페덱스 포인트 순위 8위, 그리고 세계랭킹도 15위에 올라 있다. DP월드투어에서는 7승이나 올렸고 2017년에는 유러피언투어의 페덱스컵 격인 ‘레이스 투 두바이’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다.
또한 2018년 이후 한번도 거르지 않고 라이더컵 멤버로 활약 중이기도 하다. 큰 대회 성적도 빼어나다. 데뷔 해였던 2017~18 시즌 US오픈에서 브룩스 켑카에 이어 준우승했고 2019년 디 오픈에서도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는 셰플러에 이은 은메달리스트다.(참고로 플리트우드 처럼 하염없이 ‘무관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비슷한 선수는 안타깝게도 한국의 안병훈이다. 2017년에 투어에 합류한 안병훈은 그간 225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 없이 준우승 5회와 3위 4회를 포함해 톱5 15회를 기록했으며 톱10 29회로 총 2,113만여 달러를 벌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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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우드는 PGA투어 162경기째 우승이 없지만 팬들은 그의 긍정적 마인드에 많은 격려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AP.뉴시스 |
그렇다면 플리트우드는 왜 이렇게 장기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채 ‘불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결정적인 기회가 오면 사지가 떨리고 심장이 오그라지는 ‘새가슴’이어서 일까. 아니면 "또 안 되는군. 난 안 되나?"라고 자책하는 부정적 심리의 소유자일까.
플리트우드는 반대로 굉장히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더욱 팬들의 많은 격려를 받고 있다. 플리트우드는 이번 대회 기간 중 자신에 관한 질문에 대해 "아직 PGA투어에서 우승을 못했지만, 차라리 선두권에서 안 되는 게 낫지, 아예 선두권에 있지 못하는 것 보다는 좋지 않나. 이번 주말이 그런 주말이 될지 모르니 계속 도전하겠다"고 담담하게 밝히기도 했다.
트래블러스챔피언십에서 막판 브래들리에게 역전패한 직후에는 "지금은 그냥 혼자 속상해 하고 싶지만, 미래를 위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이유는 없다.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서 앞으로 나아 가겠다"고 속내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낙천적 성격에 대해 팬들이 많은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는 말에는 "팬들의 지지가 있는 한, 함께 긍정적인 걸 찾아갈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과 아쉬운 순간들이 다음에 나쁜 영향을 주게 할 이유가 없다. 이번 주도 좋은 한 주였고 훌륭한 플레이도 많았다. 실망스럽지만 이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꾸는 힘을 찾아서 다음에도 같은 자리에 서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또 도전해야 한다"
지미 레인맨 칼럼 마지막 부분에 적고 있는 플리트우드의 이 같은 코멘트를 보면 그가 성적과 돈, 명예를 추구하는 일반의 프로 골퍼라기 보다 골프를 통해 뭔가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구도자’의 느낌이 드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또 한 주가 흘러 플리트우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번에는 세계 톱50명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BMW챔피언십이다. 그의 163번째 도전이다. 휴식을 위해 한 주를 건너 뛴 로리 맥길로이가 복귀해 셰플러와 ‘맞짱을 뜨는 대회’로 골프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투어 첫 승을 위해 담담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플리트우드의 일거수일투족에도 시선이 가는 한 주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