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韓스포츠①] '손긔졍, KOREAN' 새긴 저항정신···스포츠 강국 토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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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손기정 특별전. 사진=최서진 기자
‘손긔졍, KOREAN’

벌써 8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불굴의 의지로 금메달을 목에 건 손기정,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고개를 숙이며 나라를 잃은 슬픔에 젖어있는 그의 모습은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장면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민족을 위한 그의 저항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광경은 또 있다.
우승 직후 한 팬이 엽서에 사인을 요청했다.
손기정은 당시 그의 일본 이름이었던 ‘기테이 손’을 적지 않았다.
대신 ‘손긔졍, KOREAN’이라고 새겼다.
사인 하나에도 울분에 찬 대한민국을 담았다.

그 엽서가 손기정 특별전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에서 처음 공개됐다.
지난달 25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해 오는 12월28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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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손기정 특별전. 사진=최서진 기자
광복 80주년을 맞아 특별전 현장을 찾았다.
광복절을 앞둔 시점, 그리고 방학 시즌이 겹치면서 특별전 현장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나선 아이들이 가득하다.
AI(인공지능) 기술로 ‘그날의 영광’을 재현한 영상을 바라보며 한 아이는 “엄마! 이거 AI로 복원한 거래. 신기하지?”라며 손기정과 함께 달렸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아이들, “마침내 올라선 마라톤 세계 정상에서 맛본 것은 끝없는 좌절감뿐이었다”는 손기정의 이야기를 듣고 이내 숙연해진다.
그때 그 마음을 새기며 특별전에 전시된 1936 베를린 올림픽 부상 청동 투구, 금메달과 월계관, 우승상장, 서명 엽서 등 주요 유물을 둘러본다.
그중 그리스 청동 투구가 눈에 띈다.
전시 한 가운데서 묵직하게 공간을 채운다.
1994년 손기정은 “이 투구는 나만의 것이 아닌 민족의 것”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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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손기정 특별전. 사진=최서진 기자
특별전을 찾은 이현충(46)씨는 “어릴 때 1988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봉화를 들고 뛰던 장면을 기억한다.
당시엔 얼마나 위대하고 중요한 순간인지 몰랐다”며 “한국이라는 공동체 문화 측면에서 선수 손기정의 시간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다시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산(15)군 역시 “만약 내가 달고 뛰는 국기가 한국이 아니라면 대회 중간에 포기했을 것 같다.
아니면 끝까지 한국 선수라고 우겼을 것 같다.
그만큼 정체성은 소중한 것”이라며 “손기정 선수는 그걸 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았을까. 그럼에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보니 뭉클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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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손기정 특별전. 사진=최서진 기자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한국체육사의 시작을 알린 총성이었다.
체육계 근대화가 시작할 시점,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었다.
한국 체육은 철저한 통제와 억압을 받았다.
그러나 민족 자긍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운동장에서 이어졌다.
조선인 학교와 YMCA 중심으로 전개된 야구, 축구, 농구 등의 활동을 통해 민족적 단결과 저항정신을 키웠다.
이러한 노력이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과 함께 세상 밖으로 터져나왔다.

광복 직후는 한국 체육이 재정비하며 도약을 꿈꾸는 시기였다.
1947년 서윤복이 보스턴 마라톤에서 정상에 오르며 국민 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이듬해 대한민국은 1948 런던 올림픽에 처음 태극기를 달고 출전했다.
이어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 올림픽에도 처음 참가하며 대한민국을 세상 밖으로 알렸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제 무대 도전은 이어졌고, 체육 인프라 확충의 시간이었다.
1966년 태릉선수촌과 체육회관이 준공됐고, 이 시기를 거쳐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양정모가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체육 강국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어 1978년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 입단으로 한국인 유럽 1부리그 첫 진출이란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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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사진=손기정기념재단 제공
1980년대는 체육 르네상스 시기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다.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켰고, 이 시기 체육 인프라 확충과 전문 선수 육성 체계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 체육은 세계 정상급 스포츠 국가로 도약했다.
1990년대에는 프로스포츠가 정착하면서 국민들의 체육 참여도도 높아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는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이제는 올림픽에서도 종합 순위 상위권을 기록하며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박찬호(야구), 박세리(골프) 등 불세출의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탄생하기 시작했고, 이어 김연아(피겨스케이팅),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 안세영(배드민턴) 등 비인기 종목에서도 세계 최고 실력자가 나타났다.
특히 손흥민(축구)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한국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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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사진=손기정기념재단 제공
한국 체육의 역사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민족의 혼과 자긍심의 표현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을 이겨내며 체육으로 항거했고, 전후 혼란 속에서도 운동장을 희망의 무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정상급 스포츠 국가로서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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