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감독은 구단이 만든다’, 한국판 로버츠 감독을 기다리며 [김대호의 야구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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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도 스타와 비스타 출신 행보 달라
진정한 '명 감독'은 구단의 안목에서 결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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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메이저리그 최고 감독으로 꼽히는 LA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화제가 됐다. 비 스타 출신인 로버츠 감독은 선수들간의 소통을 강조한다. 로버츠 감독이 2024시즌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은 뒤 오타니를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KBO리그에서 2회 이상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한 감독은 김응용(10회) 김재박 류중일(이상 4회) 김성근(3회) 김인식 강병철 선동열(이상 2회) 등 7명이다. 현역 중엔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3회 우승으로 유일하다. 저마다 지도자로서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다. 특히 김태형 감독을 제외하고 아마추어와 프로시절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스타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프로야구는 초창기 강한 카리스마를 갖춘 명 선수 출신을 지도자로 선호했다. 그래야 선수들을 통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감독이 야전은 물론 선수 스카우트부터 관리까지 도맡는 총사령관 역할을 했다. 선수들 연봉 협상까지 관여했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메이저리그 연수가 활발해지면서 ‘프런트 야구’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겼다. 이때부터 단장으로 대표되는 프런트의 역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감독의 기능이 축소됐고, 프런트가 스카우트와 트레이드 등 팀 운영 전반을 맡았다. 자연스럽게 구단은 자존심 강한 스타 출신보다 성실하고 소통에 능한 감독을 찾았다.
이종운 조원우 허문회(이상 전 롯데) 최원호(전 한화) 이동욱 강인권(전 NC) 장정석(전 키움) 허삼영(전 삼성) 등은 선수 시절 뚜렷한 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다른 능력을 인정받아 감독 자리에 오른 인물들이다. 불행히도 이들 비 스타 출신 감독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특징은 충분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1~2년 안에 성적을 내지 못하면 가차 없이 경질됐다. 스타 출신 감독들이 팀을 옮겨 다니며 생명을 연장하는 것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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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 전 감독(왼쪽 두번째)은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인 10회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김응용 전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202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한 김응용 전 감독이 김성한 허구연 김종모(왼쪽부터)와 포즈를 취했다. /뉴시스 |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은 2025시즌에 앞서 2028년까지 4년 연장 계약했다. 계약조건은 총 3200만 달러, 연봉 810만 달러(약 118억 원)다. 메이저리그 감독 최고 연봉이다. 로버츠 감독은 지난해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등 다저스에서 9시즌 동안 지구 1위 8번, 월드시리즈 진출 4번, 2번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번 시즌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다.
주일미군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버츠 감독은 전형적인 비 스타 출신 지도자이다. 199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 데뷔해 5개 팀을 떠돌며 10시즌 동안 뛰었지만 내세울 만한 기록이 없다.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 .266에 23홈런이 전부다. 빠른 발이 돋보여 주로 대주자 요원으로 활약했다. 통산 도루는 243개.
평범한 로버츠 감독이 슈퍼스타가 우글거리는 다저스를 맡아 최고 감독 자리까지 오르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다저스는 2015시즌 종료 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루 주루코치였던 로버츠를 돈 매팅리 감독 후임으로 선임했다. 매팅리 감독은 뉴욕 양키스 전설 출신이다. 다저스가 로버츠 감독에게 가장 주목한 점은 그의 훌륭한 인품이었다. 로버츠는 선수 시절부터 남을 배려하고 소통하는데 탁월했다고 알려져 있다. 로버츠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같이 뛴 월드시리즈 MVP 출신의 데이비드 오티스는 "저 친구는 감독감"이라며 그의 인품에 감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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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현역 사령탑으론 가장 많은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
로버츠 감독은 선수들에게 토론을 강조한다. 다저스 라커룸이나 이동 버스에선 선수들 간 뜨거운 토론이 펼쳐지며 로버츠 감독은 이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팀 케미스트리를 키우는 최고의 방식이다. 로버츠 감독은 지난 11일 토론토전에서 2사 후 3루 도루를 시도한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 오타니 쇼헤이를 향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쓴소리를 해 화제가 됐다. 이게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엔 전력 질주를 하지 않은 오타니에게 "뇌 정지가 온 거 같다"고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로버츠 감독은 불성실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가 있으면 누가 됐든 불호령을 내린다. 스타 군단 다저스를 편견과 잡음 없이 10년 동안 이끌 수 있는 배경이다. 팀 간판 타자 무키 베츠는 "로버츠 감독이 지시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무한한 신뢰감을 보냈다. 다저스 구단은 2010년대 후반 번번이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하자 지역 언론으로부터 단기전에 약한 로버츠를 경질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다저스는 로버츠 감독의 능력을 믿고 기다렸으며, 결국 ‘명장’ 반열에 오르게 했다.
우리에게도 로버츠 감독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만한 능력을 갖춘 야구인이 지금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우리에겐 그들을 감독에 임명하는 것보다 참고 기다려 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명 감독은 구단이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로버츠 감독에게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