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물들인 오일머니]③돈으로 흔들리는 그린…변해가는 글로벌 골프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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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 골프는 2021년 모습을 드러낸 뒤 이듬해 제대로 된 체제를 갖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PIF)가 투자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투어로 이름을 알렸다.
PIF는 약 9300억달러(약 1301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국부펀드다.
총재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수장 야시르 알 루마이얀이다.
막강한 자금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세계 스포츠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LIV 골프는 돈으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싹쓸이했다.
전 세계랭킹 1위 욘 람(스페인)을 비롯해 '헐크' 브라이슨 디섐보, '메이저 사냥꾼' 브룩스 켑카(이상 미국) 등이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LIV 골프와 PGA 투어는 소송전을 펼치기도 했다.

견원지간이던 두 단체는 2023년 6월 합병을 발표했다.
골프계를 뒤흔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뉴스였다.
합병 발표와 함께 그동안 오갔던 소송도 취하했다.
LIV 골프는 오일 머니를 쏟아붓고도 흥행엔 실패했다.
지난해 9월 시카고에서 열린 LIV 골프 최종전 결승일 시청 가구 수는 8만9000가구로, 같은 시기 열린 여자 골프 대항전 솔하임컵(65만7000가구)에 크게 못 미쳤다.
LIV 골프는 올해부터 호주, 한국,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에서 대회를 개최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큰 효과는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PGA 투어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시청자 수는 360만명에 달했다.
반면 4월 열린 LIV 골프 마이애미 대회 최종 라운드는 시청자 수가 40만명대에 그쳤다.
LIV 골프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PGA 투어 측에 손을 내밀었다.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 PGA 투어 선수들도 처음엔 LIV 골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다가 두 단체의 합병에 대해선 환영 의사를 드러냈다.
PIF는 PGA 투어의 영리사업 법인인 PGA 투어 엔터프라이즈에 15억달러(약 2조989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PIF 총재이자 LIV 골프 수장인 루마이얀이 PGA 투어 엔터프라이즈 이사회의 공동 의장을 맡는 것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합병 발표 후 2년이 지났지만, PGA 투어와 LIV 간의 통합은 지지부진하다.
PGA 투어는 스트래티직 스포츠 그룹에서 30억달러(약 4조1979억원)의 투자를 받는 등 돈이 급하지 않은 상황이다.
LIV 골프와의 합병을 서두를 이유가 사라졌다.
암초들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합병을 선언하고 한 달도 안 돼 미국 법무부가 독과점 조사에 착수했다.
두 단체의 합병이 반독점법 위반인지를 조사하겠다는 발표였다.
LIV 골프와 친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도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PGA 투어와 LIV 골프의 통합 협상을 15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두 단체의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당선 직후 제이 모너핸 커미셔너, 타이거 우즈(이상 미국), 애덤 스콧(호주) 등 PGA 투어 관계자와 LIV 골프의 루마이얀을 불러 합병 관련 논의를 했다.
합병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보였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소득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PGA 투어와 LIV 골프의 합병 협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보다 복잡하다"고 태세를 전환했다.
두 단체는 합병 협상 진행 중에도 자신의 투어 발전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LIV 골프는 세계랭킹 3위인 잰더 쇼플리(미국) 영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PGA 투어도 새로운 경쟁 체제를 설계할 미래경쟁위원회 출범을 발표하며 우즈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NFL(미프로풋볼리그) 경영자 출신인 신임 PGA 투어 CEO 브라이언 롤랩은 "투어 운영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설계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단체의 합병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시 협상을 주도했던 핵심 인사들이 대부분 물러났기 때문이다.
합병 협정을 고안한 에드 헐리히 정책위원회 회장과 지미 던 정책위원회 위원이 PGA 투어를 떠났다.
합병 협정에 서명한 세 사람 가운데 키스 펠리 당시 DP 월드투어 대표는 사임했고, 모너핸 커미셔너는 올해를 끝으로 커미셔너에서 내려온다.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LIV 골프의 수장인 루마이얀 뿐이다.
협상이 추진력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사우디는 골프 외 다른 종목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축구와 포뮬러1, e스포츠, 복싱, UFC, 테니스, 미국프로레슬링(WWE) 등 다양한 종목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특히 축구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우디 슈퍼리그는 2023/24시즌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를 영입하며 세계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호날두를 필두로 네이마르(브라질)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속속 사우디로 향했다.
사우디 슈퍼리그는 올 시즌도 거액의 돈을 사용하며 선수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마테오 레테기를 비롯해 다르윈 누녜스(우루과이), 주앙 펠릭스(포르투갈), 킹슬리 코망(프랑스) 등이 대거 사우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우디 프로 축구 클럽인 알 카디시야는 레테기와 크리스토퍼 본수 바(가나), 가브리엘 카르발류(브라질) 등을 데려왔고, 총지출 금액은 1억1606만유로(약 1885억원)에 달했다.
지출 규모는 유럽 포함 전 세계의 클럽 중 15위다.
사우디는 스포츠를 통해 이미지 개선을 노리고 있다.
또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포츠를 통한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가 주도하고 있다.
그는 '사우디 비전 2030'을 지휘하고 있는 최고 권력자다.
비석유 부문 수입을 6배 확대하는 것을 목표다.
그중 스포츠가 핵심 분야다.

사우디는 2016년 이후 70개 이상의 스포츠단체를 만들었다.
지난해까지 9년간 무려 100개 이상의 A급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했다.
엄청난 돈을 썼지만, PIF는 2023년 368억달러(약 51조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2034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과 하계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027년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함께 e스포츠 올림픽도 개최한다.
같은 해 아시안컵 축구,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 2030년 엑스포가 펼쳐진다.
2026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에도 뛰어들었다.
여기에 관광 산업 육성, 경제 다변화, 정치와 외교적 영향력 확대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사우디를 방문한 관광객은 4000만명 정도다.
2030년에는 1억500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한계는 있다.
사우디는 부패와 인권 유린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우디 왕정이 스포츠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탁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포츠 워싱'이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스포츠의 핵심 명제인 공정성과 명분이 사라질 수도 있다.
사우디의 스포츠 정책은 쓴소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우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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