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선발투수' 커쇼는 '기도 세리머니' 없이 떠났다 [유병철의 스포츠 렉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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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만 감동적지만 은퇴
겸손, 봉사와 성실, 신앙, 무지개
커쇼의 마지막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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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커쇼. '살아있는 전설'의 은퇴발표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 AP뉴시스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역사가 된 폭포수 커브

이제 커쇼의 기록은 업데이트 되지 않습니다.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의 위대한 투수 클레이튼 커쇼(37)가 지난 9월 28일(현지시간)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날 5.1이닝 7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1승을 추가, 은퇴 시즌에 11승(2패)을 챙겼습니다. 충분히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좋을 때 떠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통산성적은 223승 96패. 평균자책점 2.53, 3052탈삼진. 그의 위대함은 워낙 보도가 많이 됐으니 생략합니다.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좌완투수 중 한 명, 21세기 최고의 선발투수임은 분명합니다. 여기에 다저스 원클럽맨으로 18년 동안(2008~2025) 푸른 색 유니폼만을 고집한 한결같음도 그의 위대함을 한층 빛나게 만듭니다.

# 커쇼다운 은퇴

커쇼의 은퇴는 갑작스러웠습니다. 커쇼는 자신의 마지막 홈경기 등판에 앞서 그 전날(9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격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올 시즌이 끝나면 은퇴한다. 정규리그 마지막 홈 3연전이 다가오면서 지금이 은퇴를 선언할 때라고 느꼈다. 올해 내내 엘런(아내)과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락가락했는데 시즌 막판이 다가오면서 결정을 내렸다. 한 달 전에 로버츠 감독과 팀 동료들에게는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은퇴투어는 없었습니다. 가족, 감독과 신중하게 상의했고, 결단했고, 그리고 발표했을 뿐입니다. 단 은퇴발표 시 스스로 목이 메고, 울음을 참지는 못했습니다. <더팩트>의 김대호 야구전문기자는 "은퇴투어가 흔해진 요즘, 커쇼는 정말이지 은퇴도 켜쇼답게 차분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했다"고 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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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경기 6회초에 통산 3000 탈삼진을 기록한 뒤 모자를 벗고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커쇼. 이제 커쇼의 기록은 더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 AP 뉴시스

# 커쇼의 키워드1 - 겸손

당대 최고의 야구스타이고, 엄청난 부를 얻었지만 커쇼는 가식이 없고 겸손하기로 유명합니다. 억척 홀어머니가 ‘자식은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며 미국에서 알아주는 부자동네에서 그를 키웠지만 주변에서 가장 가난했습니다. 그래도 삐뚤어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커쇼 스스로 "어떤 것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겸허하게 대한다. 이런 내 성격은 내가 자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한다."라고 말한 바 있죠.

"고교 졸업반인 1997년에야 포드 중고차를 얻었는데, BMW 렉서스 등 값비싼 차들이 즐비한 학교 주차장에서 내 차는 정말 볼품이 없었다"는 게 그의 술회입니다. 이후 2006년 드래프트 후 사이닝 보너스로 230만 달러를 받으면서 새 차를 샀는데 그게 픽업트럭이었습니다. 아내 엘런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커쇼는 아마도 여러분들이 만난 사람 중 가장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 예컨대 레스토랑에서 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메이저리그 스타라는 지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능한 피하려고 노력한다. 옆에서 지켜보면 재미있을 정도"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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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쇼와 부인 엘런이 쓴 '어라이즈'(2012년)의 미국판 표지. 한국에서는 2013년 '커쇼의 어라이즈'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다.

# 커쇼의 키워드2 - 봉사와 성실

커쇼는 2010년 고교 동창인 엘런과 결혼 후 신혼여행을 잠비아 봉사활동으로 대신했습니다. 잠비아에 고아원을 세우고, 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자선단체 ‘커쇼의 도전’은 이후 잠비아는 물론 LA, 댈러스,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퍼져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해비타트, 피콕재단 등 여러 공익단체도 후원했죠. 커쇼는 사생활이 조용하고, 흠결도 없습니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 이미 4명의 아이를 뒀고, 5번째 아이가 곧 태어난다고 합니다.

시간만 나면 아이들과 놀아주기를 좋아하는데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향후 계획에 대해 "아이들이 야구 축구 등 온갖 스포츠를 즐긴다. 그들 때문에 아주 바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선수로 커쇼는 프로정신이 대단하고, 누구보다 성실하며 동료의식도 뛰어납니다. 그가 ‘마운드의 젊은 성자’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마이클 조던(농구), 타이거 우즈(골프) 등 스포츠 고트(GOAT) 중 다수가 여자문제, 도박, 약물복용, 음주운전 등 사생활에 문제가 많았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 커쇼의 키워드3 - 신앙

커쇼는 ‘주님의 선발투수’로 불릴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런데 그의 신앙생활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는 경기장에서 자신의 신앙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위에서 언급한 봉사는 물론이고, 책을 내고, 방송에 출연하고, 행사를 기획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 그들에게 신앙을 대놓고 전할 수는 없다. 그저 기독교인이 어떻게 사는가를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커쇼의 책(어라이즈)에도 나오는 그의 전도철학입니다. 그의 X(구 트위터) 프로필에는 골로새서 3장 23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구절이 적혀 있죠. 커쇼는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이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이 구절은 내게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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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7일.류현진의 완봉승을 축하하는 커쇼(왼쪽). 류현진은 커쇼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7년을 봤는데 정말 시즌 때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루틴을 지킨다. 체력적으로 힘든 날도 있을 것이고 하루 쉬어도 될 텐데 그런 것 없이 정말 똑같이 7년을 보내는 것을 보고 그냥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했다." / AP 뉴시스

# 커쇼의 키워드4 - 무지개

커쇼의 커브는 낙차가 큰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네는 ‘폭포수 커브’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레인보우(무지개) 커브볼(Kershaw RAINBOW curveball)’로도 불립니다. 이 무지개는 커쇼의 신념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지난 6월 다저스는 한 이벤트에 사회적으로 논쟁이 된 특정 성소수자(동성애) 단체를 우여곡절 끝에 초청했고, 그들의 상징인 무지개를 모자로고에 새겼습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그 모자를 쓰기도, 다른 모자를 쓰기도 여의치 않죠. 커쇼는 성경의 창세기 구절을 모자에 넣는 기발한 선택을 했습니다. 무지개가 원래는 신의 약속이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죠(feat. 노아의 홍수). 앞서 2023년에도 커쇼는 다저스가 성소수자 이벤트를 열 때 "그들이 타인의 종교를 조롱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명백히 반대의사를 밝혔고, 추가로 기독교 모임이 열리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신을 대하듯 다른 사람을 대하고, 그들의 종교도 존중하지만 그들이 선을 넘을 때는 소신을 갖고 의연하게 대처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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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빛 다저스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는 커쇼. 커쇼는 여기에 성경 창세기의 한 구절을 넣어 무지개의 본래 의미를 강조했다. / TV 화면 캡처

# 커쇼의 마지막 바람

얼마 전 조계사 인근 안국역사거리를 지나는데, 일단의 개신교 신자들이 조계사 맞은편에서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으며 전도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에도 본 기억이 있으니 일회성이 아닌 상시활동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치 이슬람국가의 심장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하철 등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협박성 전도문구도 우리에게는 익숙합니다. 그리고 찬반이 갈리는 이슈인데 우리 대표선수들이 주요 국제대회에서 ‘기도 세리머니’를 하는 것도 종종 봐왔습니다.

이런 우리네에게 커쇼는 어떤지요? 커쇼는 자신의 책에서 "내 야구인생이 끝날 때쯤 나보다는 예수님께 더 주목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바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이렇게 팬심을 더해 그의 삶을 다른 시선으로 되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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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현지 시간) 신시내티 레즈와의 원정경기에 앞서 앞서 아들 찰리와 경기장을 달리고 있는 커쇼. 커쇼는 은퇴 후 계획에 대해 "다섯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바쁠 것"이라고 말했다. /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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