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대회 톱10 '전멸'...한국여자골프에 무슨 일? [박호윤의 IN&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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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챔피언십 21명 출전해 14위가 최고 성적
2년 만에 메이저 무관 전락 우려
한 때 리더보드 태극기 물결...'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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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한 그레이스 김(오른쪽)이 동료들로 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AP. 뉴시스 |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지난 13일 밤 LPGA투어 시즌 네 번째 메이저대회인 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총상금 800만달러)이 끝났다. 연장 접전 끝에 호주 교포 그레이스 김(한국명 김시은)이 기적적인 역전극을 펼치며 생애 첫 번째 메이저 타이틀이자 자신의 투어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레이스 김은 정규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극적인 이글로 합계 14언더파 270타를 기록, 선두였던 태국의 지노 티띠쿤과 연장전에 돌입한 뒤 2개홀에 걸쳐 펼쳐진 플레이오프에서 만화 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정상에 우뚝 섰다.
그레이스 김은 18번홀에서 펼쳐진 연장 첫 홀에서 티샷이 밀리며 오른쪽 페널티 구역으로 날아가는 치명적 실수를 했지만 벌타를 받고 드롭 후 친 네번째 칩 샷이 곧바로 홀로 빨려 들어가는 극적인 버디로 연장전을 한번 더 연장했다. 두 번째 연장전에서는 예의 두번째 샷을 홀 3.5미터에 붙인 뒤 이글로 연결, 기적적인 역전극을 완성했다. 현장에 있던 갤러리들이나 TV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골프란 게 이럴 수도 있구나…"라며 환호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러한 명승부가 펼쳐진 다른 한편에서는 부진의 늪을 헤쳐 나오지 못한 한국 선수들이 고개를 떨궈야 했다. 한국은 바로 전 대회인 다우챔피언십에서 임진희와 우승을 합작했던 이소미가 2라운드 단독 선두, 3라운드 1타 차 3위 등으로 분전했고 올시즌 메이저대회 3연속 톱10의 최혜진도 최종일을 공동 9위로 출발, 호성적을 기대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나란히 공동 1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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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선수 중 가장 컨디션이 좋은 이소미. 최종 라운드를 1타차 3위로 출발했으나 아쉽게 역전에 실패하고 공동 14위를 마크했다. /AP.뉴시스 |
한국이 메이저 대회에서 단 1명도 톱10에 들지 못한 경우는 지난해 US여자오픈 이후 13개월 만이며 에비앙챔피언십에서는 지난 2001년 대회 이후 24년만의 수모다. 에비앙은 유러피언투어로 열리다 2000년에 LPGA투어에 합류했으며 2013년부터 제5의 메이저대회로 개최되고 있다.
올시즌 LPGA투어 메이저대회는 이달 말 웨일즈의 로열 포스콜GC에서 열리는 AIG위민스오픈 1개만을 남겨 놓고 있다. 이 대회에서도 현재와 같은 부진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지난 2021년과 2023년에 이어 또 다시 메이저 무관의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은 올시즌을 좋은 분위기 속에 출발, 최근의 부진을 씻는 반전을 기대했지만 이제껏 만족스런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개막전에서 김아림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첫 단추를 잘 뀄던 한국은 3월 하순 포드챔피언십에서 김효주도 연장 접전 끝에 릴리아 부(미국)을 제치고 정상에 올라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또한 올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셰브론챌피언십에서도 비록 김효주가 5명이 펼친 연장전에서 일본의 사이고 마오에게 우승을 내줬지만 고진영과 유해란이 공동 6위, 최혜진이 공동 9위에 오르는 등 톱10에 4명이 포진해 강력한 경쟁구도를 갖추는 듯 했다.
그러나 막바로 이어진 블랙데저트챔피언십에서 유해란이 우승한 이후에는 전반적인 침체가 지속됐고 지난달 말의 다우챔피언십에서 이소미-임진희가 정상에 오르기 까지 2개월 가까이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한국은 합작 4승으로 국가별로 보면 3승씩을 기록 중인 미국, 일본, 스웨덴 등에 조금 앞선 듯 보이지만 한꺼풀 안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만도 않다.
4개의 메이저 중 단 1개도 품지 못했을 뿐 아니라 톱10에도 간신히 1~2명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다. 한 때 리더 보드 첫 장이 태극기로 도배되다시피 하던 시절은 ‘아, 옛날이여!"싶은 느낌일 정도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첫 메이저대회인 셰브론챔피언십은 준우승 포함 4명이 톱10에 들어 체면치레를 했다.
하지만 이어진 US여자오픈서는 최혜진만이 마지막날 대분전으로 공동 4위를 기록했을 뿐이고 KPMG위민스PGA챔피언십에서는 톱5는 1명도 없이 최혜진과 이소미가 공동 8위에 랭크됐을 뿐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에서는 아무도 톱10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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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3연속 톱10을 기록중이던 최혜진이 에비앙챔피언십에서는 아쉽게 공동 14위를 기록했다. 사진은 지난해 대회 모습./AP.뉴시스 |
한국여자골프는 1998년 박세리가 맥도널드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을 잇달아 제패하며 시작된 메이저 타이틀 사냥에서 지난해 전인지(KPMG위민스PGA챔피언십) 까지 그간 모두 36승을 기록 중이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가 7승(PGA챔피언십3 회, US여자오픈 2회, 셰브론챔피언십 AIG위민스오픈 각 1회)으로 가장 많고 박세리가 맥도널드LPGA챔피언십 3회와 US여자오픈, AIG위민스오픈 각 1회로 모두 5승을 기록, 그 다음을 잇고 있다.
전인지도 메이저 3승이며 박성현, 유소연, 신지애, 고진영 등 4명이 각 2승씩 그리고 김세영, 김효주, 김주연, 지은희, 유선영, 양희영, 김아림, 이미림, 장 정, 최나연, 김인경, 이정은6, 박지은 등 13명이 각각 한차례씩 메이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모두 20명이 36승을 합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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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골프가 LPGA투어에서 기록한 메이저대회 36승 중 가장 많은 7승을 수확한 박인비. 지난 2014년 에비앙챔피언십에서의 경기 모습./뉴시스 |
연도별로 들여다 보면 2008년 박인비가 US여자오픈을 우승한 이래 2020년까지 13년 중 2010년을 제외한 12개 시즌 동안 거르지 않고 매년 메이저 우승자가 탄생했으며 이 중 6개 시즌은 한국이 4개(또는 5개)의 메이저 타이틀 중 3개나 차지하는 압도적 기량을 과시한 바 있다.
2012년 최나연(US여자오픈), 신지애(AIG위민스오픈), 유선영(셰브론챔피언십)이 각각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 처음으로 한국의 시즌 메이저 3승이 기록됐으며 이듬해인 2013년에는 박인비 혼자 셰브론챔피언십과 KPMG위민스챔피언십, US여자오픈 등 메이저 3관왕에 올라 진정한 ‘그랜드슬램’에 가장 근접한 기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밖에 2015년 전인지(US여자오픈)와 박인비(KPMG위민스챔피언십, AIG오픈) 2017년 박성현(US여자오픈), 김인경(AIG오픈), 유소연(셰브론챔피언십) 2019년 이정은6(US여자오픈) 고진영(셰브론챔피언십, 에비앙챔피언십)이 각각 한국의 메이저 3관왕에 기여했고 2020년 마지막으로 김아림(US여자오픈), 김세영(KPMG위민스챔피언십), 이미림(셰브론챔피언십)이 메이저 3승을 합작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꿈같던 시절’은 이제 좋은 추억으로만 새겨지는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2021년 이후 메이저 성적은 당연하고 전체 승수 조차 5승을 밑도는 지경이 된 것이다. 한 때 투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5승을 세차례나 기록했지만 2022, 2023년에는 4승, 5승으로 급전직하했고 급기야 지난해는 단 3승에 그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많은 언론에서 이미 지적한 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다. 한국은 기존 선수들의 다수가 전성기를 지나 하락세에 접어들고 이를 대체할 젊은 피의 수혈이 더뎌지면서 침체기에 접어든 반면 한국에 자극받은 태국의 주타누간 자매와 티띠꾼, 패티 타와타나킷 등 새로운 스타들이 투어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중심추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근래 들어 일본세가 급신장해 전에 없는 화력을 과시 중이다. 종래의 골프 강국인 미국과 스웨덴 등 유럽세도 한 때의 침체를 벗어나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됨에 따라 최근 투어의 판세는 절대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의 모습 그대로다.
올시즌 18개 대회가 치러진 현재 단 1명의 다승자도 없이 18명의 챔피언이 탄생한 이례적인 현상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지난해 상반기에 나타났던 넬리 코다의 독주체제 보다는 훨씬 재밌고 치열한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으로선 최근 들어 KLPGA투어 간판스타들인 황유민, 방신실, 김수지 등이 기회가 되면 과감하게 LPGA투어에 모습을 드러내고 또 몇몇은 내년 시즌 본격적으로 투어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되고 있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