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오타니, 슈퍼맨 아니다...투타겸업 '한계' [황덕준의 크로스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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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31)가 팔꿈치 인대 접합술을 받은 지 21개월 만인 6월 17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전에서 선발 등판하면서 '투타겸업'을 재개하기 시작했다./AP.뉴시스 |
[더팩트 | LA=황덕준 재미 언론인] LA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31)가 투타겸업을 재개한 지 한달이 지났다. '토미 존' 수술이라 불리는 팔꿈치 인대 접합술을 받은 게 2023년 9월 20일(이하 한국시간). 그로부터 21개월 만인 6월 17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를 상대로 선발등판, 1이닝 동안 28개의 공을 던졌다.
이후 5~6일, 길게는 8일 간격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7월 22일 미네소타 트윈스전까지 6경기에서 합계 12이닝 동안 삼진 13개를 뽑았다. 홈런 1개를 포함, 9안타와 4구 3개를 내주고 2실점, 평균자책 1.50을 기록했다. 세 번째 등판했던 6월 29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치른 방문경기에서는 101.7마일(약 163.7km)짜리 강속구도 던졌다.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측정된 오타니의 최고구속 102마일(약 164.2km)에 맞먹는 스피드를 뿜어냈다. 2경기씩 이닝을 늘려가며 투구수 50개 이하로 조절한 오타니는 8월부터 5이닝 이상 소화하며 본격적으로 승수 사냥에 돌입할 것이다. 오타니가 투구이닝을 길게 가져가면 다저스 마운드에 '보양(補陽)효과'를 줄 것임은 틀림없다.
부상선수가 많아 선발과 불펜 모두 허덕거리는 다저스는 올스타게임 휴식기를 전후해 치른 15게임에서 4승 11패로 바닥을 기는 참이니 말이다. '슈퍼스타'라는 별명을 고유명사처럼 붙이게 된 이유가 투타겸업인 만큼 오타니가 재가동하는 이도류(二刀流) '쌍칼' 신화는 야구팬의 도파민을 한껏 펌프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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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는 선발 등판 후 현저하게 타격 성적이 떨어져 이제 나이를 고려해 '이도류' 고집을 버리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게 낫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AP.뉴시스 |
오타니는 리틀야구 시절부터 일본 고교야구와 프로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이르기까지 야구 경력의 모든 과정에서 투타겸업을 이어왔다. 2022년 LA에인절스에서 15승을 거두고 34개의 홈런을 날려 베이브 루스 이후 104년 만에 처음으로 한 시즌 두 자릿수 승수와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며 투타겸업의 슈퍼스타로 명명됐음은 널리 알져진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 야구계에선 투타겸업에 대한 비판도 적잖게 쏟아냈지만 오타니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문제에 대해선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빅리그에 진출한 뒤 2018년 10월 첫 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았을 때는 타자에 전념해야 한다는 지적이 절정에 달했다. ‘쌍칼검법’은 미야모토 무사시가 등장하는 사무라이 시대극에서 즐길 일이라는 비수 같은 비아냥이 날아들었다.
오타니는 귀를 닫고 2021~2023년 세 시즌 동안 투수로서 34승(16패), 타자로서 449안타와 홈런 124개, 타율 0.277을 기록, 회의론자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세계 최고의 야구무대에서 슈퍼스타의 입지를 뿌리내린 그에게 다저스는 2024년부터 2033년까지 계약기간 10년에 7억달러(한화 약 9594억원)라는 세계 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의 돈보따리를 안겼다.
상기해야할 대목은 당시 다저스가 계약조건에 투수로도 뛰어야 한다는 겸업을 의무조항으로 넣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계약하기 전에 이미 두 번째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상태였기에 오타니의 투수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다저스 구단은 투타겸업을 하지 않더라도 오타니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최고액 계약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에 무게를 두었던 셈이다.
현실의 한쪽에서는 자잘한 통계를 뒤적거리며 오타니의 피칭이 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투수로 등판한 날과 그 다음날의 타격 성적이 오타니의 평균치에 한참 모자란다는 것이다. 오타니는 선발투수로 던진 날 6게임에서 24타수 6안타 0.250의 타율을 기록했다. 홈런 2개에 2루타도 1개 있고, 9타점을 거뒀으니 크게 나쁘진 않다.다만 무려 12차례나 삼진아웃 당했다.
선발 등판 바로 다음 날의 5경기에서는 두드러지게 저조하다. 20타수 2안타 타율 1할이다. 홈런 1개와 4구 2개로 3득점을 올렸으나 삼진을 8개 당했다. 빅리그에 진출해 투타겸업이 빛나던 2021~2023시즌 에인절스 시절의 등판일 타율 0.274와 등판 다음날 타율 0.282를 들이대기엔 통계의 바탕인 경기수가 워낙 적긴 하지만 그냥 무시하기엔 걸리는 게 있다.
바로 나이다. 1994년생인 오타니는 지난 7월 5일로 만 31살을 넘겼다.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생겼다. 슈퍼스타이므로 슈퍼맨 같은 체력이 유지되리라는 건 만화 같은 얘기다. 인간이기에 나이에 따른 생체의 변화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선발등판 다음날의 타격이 1할이라는 사실은 0.2초 만에 시속 90마일(약 145km)대 속도의 투구에 반응해야 하는 타자의 순간결정력이 흐트러졌다는 뜻이다.
순간적인 판단과 결정은 집중력의 문제이고, 체력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게 마련이다. 투타 겸업으로 인한 '피로 누적'과 '부상 리스크'는 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다닌다. 체력 저하와 인대 손상의 위험성은 '의지'나 '꿈'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물리적인 벽이다. 그의 팬과 야구계가 원하는 것은 '날마다 경기장에서 뛰는 오타니'이지, 언제 다시 쓰러질지 모를 위험이 상존하는 '쌍칼검법'의 실험이 아닐 것이다.
오타니는 여전히 투타겸업이 자신의 목표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무라이의 길'처럼 '이도류'가 자신의 정체성인 듯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저스 구단과 코칭스태프 또한 그의 투타 겸업이 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속 100마일(약 161km)짜리 강속구를 던지고 440피트(약 134m)가 넘는 장쾌한 홈런포를 쏘아대는 선수에게 어찌 투수와 타자 중 한가지를 선택해 집중하라고 참견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해도 오타니는 앞으로 10년, 길어야 12~13년 남은 현역선수 경력에서 더 많은 '위업'을 거두려면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할 시점이다. '완벽한 투타겸업 선수'라는 이상과 개인적인 꿈에 매달리기보다 타격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 역대 최고의 타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리하여 홈런과 타율 등 타격 부문에서 각종 기록을 깨뜨려나갈 때 진정한 전설과 신화의 완성이 무르익어 감동을 줄 것이다. '투타 가능한 존재'임을 증명한 것은 지금까지로도 충분하다. 이제 '지속 가능한 존재'임을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