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FC 흥행 대박' 손흥민, 다른 무대 '새 문법'이 필요 [황덕준의 크로스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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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C로 이적한 손흥민이 출전 2경기 만에 MLS 무대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독점하고 있다./LAFC

[더팩트 | LA=황덕준 재미 언론인] 손흥민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로스앤젤레스 축구클럽(LAFC) 입단 발표회견을 가진 게 8월 7일(이하 한국시간). 그로부터 사흘 만에 후반 교체멤버로 첫 경기에 나섰고, 열흘 만에 선발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 짧은 시간 LAFC는 물론 MLS는 온통 손흥민을 주어로 삼았다. 시카고와 보스톤 인근 폭스버러에서 치른 두 차례 원정경기 중계는 경기 개시 전부터 미국인 캐스터와 해설자가 "손흥민" 이름 석자를 수도 없이 또렷하게 발음해냈다.

시카고 파이어를 상대한 10일 경기 때는 벤치에 있던 전반에만 수시로 손흥민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잡았고, 태극기를 내세운 한국인 관객과 백넘버 7이 새겨진 유니폼 상의를 입은 관중들을 수시로 비췄다. 뉴잉글랜드 레볼루션을 상대해 선발로 중앙 톱에 섰을 때는 한국중계팀이 아닌가 싶을 만큼 "손흥민! 손흥민!"을 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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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뉴잉글랜드와 원정 경기 종료 직전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존재감을 발휘했다./LAFC

그라운드 밖에서도 손흥민에 관한 화제는 가히 마니아급이다. MLS 사상 최고액 이적료 2650만 달러를 토트넘 홋스퍼에 지불한 LAFC는 올시즌 홈에서 4경기밖에 남지 않았지만 내년 시즌 20게임까지 한데 묶어 연간 회원권인 시즌패스 판매에 팔을 걷어붙였다. 최저 1500달러에서 최고 3만 달러에 달하는 시즌패스는 거의 매진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에 앞서 손흥민의 LA 홈데뷔전이 될 9월 1일 샌디에이고FC와의 경기는 손흥민 입단 전까지만해도 40~50달러짜리 입장권이 수두룩했지만 최근 열흘 새 온라인 재판매 플랫폼에서조차 최저가는 200달러를 넘기고 있다. LAFC의 단장을 겸하고 있는 존 토링턴 공동대표는 영국 축구팬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매체 토크스포츠와 가진 인터뷰에서 "손흥민의 유니폼 저지 판매량이 리오넬 메시(마이애미)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나스르) 등 축구 선수는 물론이고 NBA의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 다른 종목 선수 유니폼보다 많이 팔렸다"고 거리낌없이 자랑했다.

구체적인 판매수치를 내놓진 않았지만 LAFC의 홈구장인 BMO스타디움 내 기념품 매장의 풍경은 나름대로 그 근거를 제공한다. 손흥민의 유니폼 상의 물량이 사이즈별로 충분히 공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팬들이 몰리다보니 영문 성씨와 한글 이름, 백넘버 7을 매장에서 직접 프린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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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LAFC의 손흥민 유니폼./LA=황덕준 언론인

이른바 '빈' 유니폼 한벌을 170달러에 주고 사서 30달러를 더 내면 즉석에서 프린트해주는데 한벌 당 2분 가량 걸린다. 손흥민 입단 후 열흘 동안 프린팅 서비스를 받기까지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니 얼추 판매량이 추정된다. 2분마다 프린팅기계 3대를 작동하면 한시간에 90벌. 하루 5시간씩 프린팅서비스가 진행됐다고 치면 450벌이다. 열흘 동안 4천500벌. 여기에 이미 프린팅된 유니폼 판매량을 보태면 한벌당 200달러씩 계산해도 이미 100만달러를 훌쩍 넘는다. 하루에 10만달러 이상 팔린 셈이니 입을 다물기 어렵다.

오프라인 매장 한 곳에서만 그러하니 수십 곳에 달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판매량을 더하면 토링톤 대표의 자랑이 결코 과장은 아닐 듯싶다. 이 같은 '소니 마니아(Sonny-mania)'는 데이비드 베컴이 LA갤럭시로 옮겼을 때를 능가하고, 메시가 MLS 인터마이애미로 이적했을 때도 이랬던가 싶을 정도다.

LA를 같은 프랜차이즈로 삼고 있는 메이저리그 다저스가 손흥민을 시구에 초청하고, NBA 레이커스도 오는 10월의 정규시즌 개막경기 때 팁오프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뿌듯하게 충만시키는 손흥민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지 날마다 실감하는 가운데 한가지 묘한 생각이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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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열풍은 홈 원정을 가리지 않고 MLS 전역에서 일고 있다./LAFC

세계 축구 최고의 무대라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10년 가까이 내달린 손흥민은 더이상 '검증'이 필요하지 않다. 토트넘 소속으로 EPL과 기타 공식전을 포함해 454게임에 출전, 173득점 97도움을 거뒀다는 기록을 굳이 들춰내지 않더라도 그는 세계축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명성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그런 손흥민이 EPL에 비하면 5~6등급 아래인 MLS에서 뛴다. 미디어는 그가 언제 첫골을 기록할 지에 집중하는 듯하다. 굳이…? EPL 사상 9시즌 연속 두자릿수 득점을 거둔 유일한 선수라는 타이틀마저 거추장스러운 손흥민을 MLS 그라운드의 공격포인트나 득점 여부에 초점을 두는 분위기 조성은 심히 마땅찮다.

빌보드 차트를 넘나드는 BTS나 블랙핑크를 놓고 국내 음악순위 1위가 되느냐 마느냐를 저울질하겠는가. 오타니 쇼헤이가 일본프로야구로 돌아와서 홈런을 날리면 열도 전체가 들썩거리겠는가. 손흥민이 MLS에서 넣는 골 자체는 멋질 것이지만 이미 정상에 오른 선수가 무대를 넓혀가는 확장의 몸짓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EPL 시절 맨체스터 시티의 압박, 리버풀의 속도전, 아스널의 정교함 속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수비수들과 매주 검투사처럼 맞서 싸우며 명성의 탑을 쌓아올린 그 골과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른 것임은 누구나 안다. 그렇다고 MLS 무대를 평가절하하자는 건 아니다. 오히려 MLS에서 손흥민은 단순한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라 문화적 확장의 아이콘이다.

싸이가 유튜브로 '강남스타일'을 전 세계에 퍼뜨린 뒤, 후배 가수들이 글로벌 플랫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처럼, 손흥민의 MLS 경력은 후진들에게 "EPL 뿐 아니라 미국 무대도 뛸 만하다"라는 또 다른 좌표를 제시하는 일이다. 그의 MLS 무대는 더 이상 '성공할까, 실패할까'의 불확실성을 따지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완성된 선수가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는 문화적 행위다.

박수의 무게와 느낌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한국 축구가 새로운 영역으로 스며드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지난 17일 뉴잉글랜드와 치른 경기 막판 골문 앞에서 치고 들어가다 왼편으로 따르던 마티외 슈아니에르에게 패스, 골로 이어지게 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토트넘 시절이었다면 그의 왼발로 골문을 직격했을 터다. 순간적인 판단은 더이상 득점으로 증명할 필요가 없는 '전설'의 그것이었다. 손흥민의 어시스트를 받아 쐐기골을 터뜨린 슈아니에르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달려오길 기다렸다"며 "패스는 내게 정확히 전달됐고, 완벽했다"고 고마워했다.

스티브 체룬돌로 LAFC감독은 "손흥민의 기술과 축구 지능이 경기장에서 명확히 드러났다"고 찬탄했다. 이 경기에서 최우수선수(Player of the Match)로 평가받은 손흥민은 MLS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매일매일, 매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며 미소를 건네고,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의 영리한 선택을 해내는 모습은 심지어 울컥해지는 감동마저 준다.

EPL 시절의 질주와 득점이 세계 정상에서의 증명이었다면, MLS에서는 '축구의 경계를 확장하는 위대한 걸음'이다. 손흥민은 더 이상 "될까 안 될까"로 손톱 깨물며 지켜봐야하는 선수가 아니다. 그는 이미 증명된 이름이고, 이제 "어디까지 넓혀갈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서사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MLS 골을 기다리며 일희일비하기보다 완성된 선수가 다른 무대에서 새로운 언어와 문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의 발자국은 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찍어내는 위업의 증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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