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진의 상승세, '불운 극복' 로리 케인과 닮았다 [박호윤의 IN&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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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메이저 대회 3연속 톱10, 최근 4연속 톱10 상승세
우승에 대한 조급함, 집착 내려놨다
유럽원정 3개대회 중 승전보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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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베어즈베스트청라CC에서 열린 제15회 롯데오픈 1R 1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는 최혜진./ KLPGA |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로리 케인이라는 여자 프로골퍼가 있다. 캐나다 출신 1964년생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LPGA투어에서 활약한 그는 많은 업적을 남긴 대스타는 아니지만 투어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로서 통산 4승을 올렸고 모범적인 생활과 훌륭한 매너로 많은 팬과 관계자들로 부터 찬사를 받은 바 있다.
현재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간간이 대회에 모습을 드러내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기도 하다. 케인은 골프 강국이라 하기에는 좀 부족한 캐나다의 골프 대모(代母)로 불리며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메이저 2승 포함, 투어 13승으로 역대 캐나다 출신 최다승을 올리며 세계 정상급 골퍼로 활약하고 있는 브룩 헨더슨(28)이 대표적 후배로 꼽을 수 있다.
케인은 그의 조국 캐나다에서 골프 명예의 전당까지 오른 레전드로 대접받고 있지만 이러한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지 실로 험난한 여정을 겪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서른을 훌쩍 넘긴 시기인 1996년 LPGA투어에 데뷔해 2013년까지 뛰면서 4승과 톱10 99회 등으로 총 700만달러 이상을 벌어 들이며 정상급 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데뷔 5년차였던 2000년 시즌에 생애 첫 승을 올리기 까지 앞선 3시즌 동안 무려 9차례나 준우승을 경험한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케인이 이렇듯 거푸 정상의 문턱에서 분루를 삼키자 캐나다 언론은 그녀를 ‘Lovable Loser(매력적인 패배자)’로 칭하며 대대적인 안타까움을 표한 바 있다. 그의 9회에 걸친 준우승 중에는 4차례의 연장전 패배가 포함돼 있을 정도로 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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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레전드 로리 케인이 지난해 CP여자오픈에 30년 연속 출전했을 당시의 모습. 우리 나이 환갑의 케인은 더 이상은 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LPGA |
데뷔 2년째인 1997년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수잔 G 코멘 인터내셔널, 스테이트 팜 레일클래식, 토레이 재팬클래식, ITT 투어챔피언십 등 무려 4개 대회를 정상 1보 전에서 놓쳤고 98년에도 칙필A채리티챔피언십에서 또 다시 준우승했다. 또한 99년에는 스탠다드 레지스터 핑 등 3개 대회서 2위에 그치는 등 자칫 ‘승리의 여신’으로부터 가장 외면을 받는 ‘준우승 전문가’로 낙인(?)이 찍힐 것만 같은 불운은 지속됐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서도 케인은 항시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훌륭한 매너와 남을 배려하는 고운 마음씨를 가졌으며 또한 투어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 등에 항상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투어 생활을 이어갔으며 결국 2000년 시즌에 마침내 감격의 LPGA투어 첫 승을 올리는데 성공한다.
미켈롭 라이트클래식에서 투어 5년 만에 어렵사리 마수걸이 우승을 차지한 케인은 한번 물꼬가 터지자 같은 해 두차례 더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정상권 선수로 우뚝선다. 뉴올버니클래식에서 당시 2주 연속 우승을 노리던 김미현을 연장 첫 홀에서 따돌리며 시즌 두번째 정상에 올랐고, 그 해 말 일본에서 열린 미즈노클래식에선 스웨덴의 소피 구스타프손을 역시 연장 접전 끝에 누르고 시즌 3승째를 기록했다.
아홉 차례의 준우승 가운데 4번이 연장전 패배였던 케인은 반대로 3승 중 2승을 연장전에서 거두며 연장 징크스를 깨기도 했다. 케인은 이듬해인 2001년에도 하와이에서 열렸던 다케후지클래식에서 자신의 투어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다.
서른 둘의 늦깍이로 투어에 데뷔해 한참 동생뻘 선수들과 경쟁을 하면서 극심한 불운까지 겪었음에도 포기나 조급함보다는 이를 성실함과 반듯함으로 이겨낸 로리 케인의 성공 스토리는 사뭇 감동적이다.
이렇듯 로리 케인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푼 이유는 최혜진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최혜진은 지난 주 오랜만에 귀국해 자신의 후원사가 주최하는 롯데오픈에 출전, 국내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김효주와 함께 출전한 이 대회에서 둘은 나란히 공동 18위에 오르면서 샷을 가다듬은 뒤 올시즌 네번째 메이저대회인 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 출전차 프랑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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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일시 귀국해 롯데오픈에서 우승한 최혜진이 동료들로 부터 축하 물세례를 받고 있는 모습./KLPGA |
최혜진은 지난 2022년 투어에 데뷔해 올해로 투어 4년차다. 그간 89개 대회에 출전해 아직 우승이 없다. 하지만 25차례나 톱10을 기록하면서 550만달러가 넘는 상금을 획득했다. 루키 시즌이던 2022년에는 27개 대회에 출전, 1개 대회를 제외하곤 모두 컷오프를 통과했으며 CP여자오픈 공동 2위를 비롯, 톱10에 10차례나 드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지노 티띠꾼(태국)에 이어 신인왕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시즌에는 더욱 안정감 있는 기량으로 마이어클래식 준우승 포함, 최근 4개 대회 연속 톱10에다 이미 치러진 3개의 메이저대회서 모두 톱10 안에 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탄탄한 실력을 뽐내고 있다.
사실 최혜진은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LPGA투어에 진출했던 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빠지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를 탄 케이스다. 2019년 무려 5승에다 2위 2회, 3위 한차례 포함 톱10을 13회나 기록하는 등 맹위를 떨치며 KLPGA투어 대상, 상금왕, 평균타수 1위 등 주요 부문 상을 싹쓸이했고 데뷔 해였던 2018년에는 신인왕과 대상을 한꺼번에 수상하기도 하는 등 미래가 촉망되는 최대어임을 과시한 바 있다.
아마 신분으로 참가했던 2017년 US여자오픈에서는 마지막 라운드 중반까지 당시 정상에 오른 박성현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2위를 기록하는 등 이미 미국무대에 인상적인 경기력을 과시한 바 있다. 때문에 최혜진이 LPGA투어에 진출할 당시에는 지금 처럼 장기간 우승을 목말라 할 것이라고 판단한 관계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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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시절이던 2018년 KLPGA투어에서 신인왕과 동시에 대상을 수상한 최혜진이 2개의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뉴시스 |
최혜진의 경우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잘 안되면 대부분은 우선 마음이 조급해지고, 경기 중 다소간의 위기가 찾아오거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아 또 안되는구나…"하며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이 잦으면 일종의 병이 되면서 골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는 멘탈이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혜진은 이런 과도한 우승에 대한 집착이나 조급함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최혜진은 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 출전을 위한 출국에 앞서 국내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전에는 ‘나는 왜 안되지?’,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과 조급함이 있었는데 요즘은 마음을 많이 내려 놓았다"고 말하고 "우승이 간절하긴 하지만 악쓴다고 되는 게 아닌 만큼 좋았던 기억들만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우승도 따라 올 것이라 믿는다"고 한결 성숙한 자세를 보였다.
최혜진은 로리 케인 보다 훨씬 젊고 패기에 찬 나이에, 그 보다 월등한 성적과 기량을 안고 투어에 뛰어 들었다. 거기다 이제 3년 반이라는 인고의 시간도 겪은 만큼 조만간 승전보를 전해 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것이 빠르면 이번 프랑스(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 스코틀랜드(ISPS 한다 스코티시여자오픈) 그리고 웨일즈(AIG여자오픈)로 이어지는 한달간의 유럽 원정 기간일 수도 있다.